Story/짧은 이야기

[삶의 우선순위]

Jessie_the_Rich 2025. 4. 7. 19:50
SMALL

-2025. 4. 6- 꿈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다.

 

 

바닷가 술집.

모래사장 위에 나무로 된 테이블과 벤치가 놓여있다.

공기는 선선하고 밤은 깊어가고 있었으며, 

주변엔 갈매기들의 소리가 종종 맴도는 어쩐지 너무나도 차분한 분위기 였다.

검은 원피스를 입은 20대 중반의 여자는 옆에 있는 유모차 한 손으로 슬쩍 슬쩍 흔들고 있었고

그녀의 자리에는 반쯤 비워진 소주잔이 있다.

맞은편에는 앉아 있는 나는 아무래도 그녀의 또래 인 것 같았다. 

우리 둘은 바닷가 산책 중에 우연히 만났다.

아이를 좋아하는 나는 유모차 안에서 방실방실 웃으며 놀고 있는 그녀의 아이를 지나치지 못하고

이끌려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녀가 현재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지만

아이를 바라보며 삶에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내 삶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녀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래사장 위에 자리한 작은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몇 가지 음식을 시키고

그녀를 위해 술을 시켰다.

테이블위에는 음식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술은 줄었지만 음식은 줄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주위를 살펴달라고 부탁을 했고

가방춤에서 위생비닐을 꺼내 직원 몰래 음식을 담아서 가방에 넣었다.

겸연쩍어하는 미소로 그녀는 '이렇게 해서라도 아껴야해요. 이 정도면 몇일은 집에서 아이와 보낼 수 있는걸요."

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괜찮아. 눈치 보지 말고 담아가"라고 응대해 주었다.

 

그 때 머리에 검은 플라스틱비닐을 쓴 노파가 그녀의 곁에 다가 왔다.

그녀의 행색은 노숙자 같이 매우 남루했으며, 

바다에 내리는 안개비에 어느 한 곳이라도 보호 하고 싶어 비닐을 쓰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150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작은키, 검은 봉지 밑으로 새어 나온 구불거리는 회색 머리칼은 덩어리져 뭉쳐 있었다.

여자는 흠칫 놀랐다. '혹시 음식을 싸가면 안되는데, 사장에게 들킨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났다.

 

여자는 끝끝내 몰랐다.

그 노파는 어릴 적 여자를 떠나버린 그녀의 엄마라는 사실을. 

(이건 꿈 이었기 때문에 알게된 전개 같다. 마치 그 두 사람의 스토리를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노파는  단 번에 자신의 딸을 알아본 듯 했다.

아마도 그 노파는 이 술집에서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도우며 근근히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노파는 몰래 김치 한포기를 비닐에 싸 가지고와 여자의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이것도 챙겨 넣어. 괜찮으니까 이거 먹어'

그렇게 가방에 김치를 넣으며 도망치듯 노파는 떠났다. 

어릴적 여자를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으리라.

노파는 그 김치 한포기로 오늘 일자리를 잃었다.

 

바다 소리에 아이는 그새 잠이 들었다.

 

장면이 이동했다.

 

여자는 카센터 근처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여군모집'과 관련된 전단지를 발견했다.

유모차를 세워둔 지도 모른채 전단지에 정신이 팔려 수십 번 읽어 내렸다.

관사. 월급. 교육. 이 세 글자가 여자를 부르는 것 같았다.

집을 준다고? 월급도 주고? 아이 교육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여자는 전단지를 손에 쥐었다. 

그 순간 유모차가 자신의 곁에 없다는 것을 눈치 챘다. 

당황한 여자는 카센터에 들어가 CCTV를 보게 해 달라며, 유모차가 사라졌다며, 아이를 찾아달라 애원했다.

카센터 여 사장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이가 참 착하네, 엄마가 뭐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에게 시간이 필요하니, 아이가 잠시만 자기를 맡아달라기에 내가 데리고 있었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여자는 유모차 안에 있던 아이를 들어 안아 올렸다.

3살 정도의 사내아이. 여자는 이 똑똑하고 배려심 깊은 아이를 어떻게든 잘 키워내고 싶었다.

손에 꼭 쥔 전단지를 들고 여자는 자리를 떠났다.

 

장면이 이동했다.

 

여자는 밤낮으로 운동을 했다. 

어떻게는 군인이 되어야겠기에 최선을 다해서 체력을 길렀다.

아이와 함께 놀아주지 못했지만, 그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군인만 된다면, 아이에게 모든 걸 다 해 줄 수 있어. 우리 둘 모두 조금만 참으면 된다!'

 

하루는 마을에 작은 장이 열렸다. 

아동복을 파는 트럭이 왔고, 여자는 아이에게 좋은 옷, 예쁜 옷 하나를 사주고 싶어서 

옷더미를 뒤적였다.  하지만 그녀의 형편으로 사기엔 너무 비싼 옷 들 뿐 이었다. 

여자는 아이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눈빛에는 연신 '옷은 필요없어. 나는 금방 크니까, 비싼옷은 사지 않아도 돼'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3살짜리 아이에게 그동안 변변한 장난감 하나 사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죄책감이 들었다. 

'아, 나는 이 작은 아이를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이 아이를 위해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옷 한벌, 장난감 하나도 해주지 못했다니...'

 

여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장난감을 파는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수히 많은 장난감들 속에서 아이가 비싼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과

하지만 장난감이라도 하나 제대로 사주고 싶은 마음이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쳤다.

 

아이는 작은 플라스틱 북을 하나 잡았다.

저렴한 가격의 작은 플라스틱 북.

아이는 양손으로 두두두둥 두두두둑 연거부 북채를 두들겨 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이거면 되겠어?"

아이는 말했다. "이게 좋아요."

소담한 아이의 욕심에 엄마는 마음이 찢어졌다. 

내가 꼭 성공할거야. 아니 성공은 하지 못하더라도 

네가 원하는 것들을 눈치 보지 않고 가질 수 있도록 꼭 군인이 될게!

 

 

그렇게 여자는 군인이 되었다.

군인이 된 날.. 첫 훈련...

 

총기 오발 사고가 있었다.

그녀는 머리에 총을 맞았다. 

그렇게 그녀는 죽었다.

 

 

부대에서 그녀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고

오발 사고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군인이 된 첫 날이었기에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관심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들만 있었을 뿐.

 

수일의 시간이 흘러서야 사람들은

그녀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그녀의 집에는

작은 북을 껴안고 굶어 죽어 있는 작은 아이가 있었다.

 

.....

 

 

 

 

꿈에서 깬 나는

어딘가에는, 우주 어딘가에서는 살고 있을 이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질문을 해본다. 

"당신의 그런 치열한 삶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끝은 정말 행복했는지..."

 

그리고 질문한다.

나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다가 넘어졌다.

목표를 잃어버리고 하루를.. 그냥 하루를 살고 있었다. 

돈이 있어야 행복이 있을 것 처럼, 모든 목표를 돈 뒤에 세워두고 마치

돈이 있어야만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무대포처럼 쫓던 그 삶이 행복했는가?

결국 무너졌을 때 그 어떤것도 가지지 못해 좌절했던 긴 시간의 터널을 보내며 

나는 어떻게 부서졌는가?

 

지금이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지금, 하루 벌어 하루를 생활하지만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매일 웃을 수 있는

어머니와 딸을 가진 오늘 하루가 얼마나 값진가?

 

  

LIST